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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밥그릇’ 말고 ‘밥값’에 관심을

지난달 말부터 한국에서는 새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 논의 중 통상 조직과 기능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놓고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추한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다.   통상 조직과 기능은 김영삼 정부에서는 산업부로,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교부로,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는 다시 산업부로 옮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외교부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이를 되찾겠다고 나선 것이다.   팽팽한 대립 속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외교부로 이관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는 듯 하더니 한덕수 초대총리 후보자가 등장하면서 ‘통상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조직을 신설하는 방안이 최근 힘을 얻고 있다. 결국 인수위 측은 조직 개편의 최종 결론을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룬 상태다.     통상 기능이 어디로 가든,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관료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밥을 먹은 후에 이들이 ‘밥값’을 하는 것이다. 중국의 덩샤오핑 전 주석은 이른바 ‘흑묘백묘론’으로 유명하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인데,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국민을 잘 살게만 하면 된다며 중국에 시장경제를 도입할 당시 강조했던 내용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통상 기능은 ‘외교통상부’ 소관이었다. 이때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고, 한국정부는 이를 큰 성과로 내세웠다.     하지만, 당시 ‘한국인 전용 취업비자’를 확보하지 못했다. FTA 협상을 마무리하는 게 더 중요했기에, 이 문제는 추후 논의하자는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결국 다음 박근혜 정부에서 통상 기능이 산업부로 이관됨과 동시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슈가 됐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싱가포르와 칠레는 매년 각각 5400개와 1400개의 별도 전문직 취업비자(H-1B1)를 제공받고 있다. 호주는 FTA 체결로 ‘E-3 비자’라는 신설 비자로 매년 1만500개의 취업비자를 보장받았다. 미국과의 교역규모에서 호주를 훨씬 능가하는 한국은 아직 빈손이다.   한인사회의 노력 등으로 연방의회에는 지난 회기까지 매번 ‘한국과의 동반자 법안(Partner with Korea Act)’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연간 1만5000개의 전용 취업비자(E-4)를 제공하는 내용의 법안이 상정됐다. 하지만, 번번이 통상 외교의 실패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일자리 찾기가 최고의 과제인 한국 청년들이 매년 1만5000명씩 미국에서 일할 기회를 얻고, 미국 내 한인 기업들도 구인난을 크게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자 어쩌면 FTA를 통한 우리의 ‘권리’일 수도 있는 문제가 ‘제대로 밥값을 하는’ 관료들에 의해 이제는 해결되길 기대해 본다. 박기수 / 편집국장데스크 칼럼 밥그릇 밥값 정부조직 개편 전용 취업비자 정부 출범

2022-04-14

[데스크 칼럼] 이번엔 재외동포처 설립해야

한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누구도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하면서 재외선거의 표심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졌다.     물론, 재외동포들의 표심도 크게 갈렸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치르는 동안 동포들 사이에서 한목소리를 낸 이슈가 있다.   바로 ‘재외동포처(청)’ 설립이다.     이는 모든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이다.   이전의 대선때도 정치권에선 이구동성으로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선거가 끝나면 갖가지 핑계로 무산시켰다.   그러나 이번엔 달라야 한다. 사실 재외동포 전담 부처의 설립은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합리적인 요구사항이다.   한국에 있는 국민들과 달리 재외공관이 정부와의 유일한 소통 창구인 재외동포들은 행정적 사각지대에 있다. 한국정부 입장에서도 현행 체제하의 재외동포 정책은 일관성이 결여되고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다.   가장 쉬운 예로,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을 지원하는 한국정부의 창구는 최소 3곳이다. 동포들이 차세대 한인들을 위해 설립한 한국학교(한국정부는 한글학교로 분류)는 일정 요건을 갖출 경우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에서 소액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교육용 교재는 교육부가 제공한다. 여기에다 비슷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지만 타민족을 대상으로 교육할 경우엔 문체부가 ‘세종학당’ 브랜드로 관리, 지원하고 있다. 당연히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육문제 뿐만 아니다. 재외동포의 영사 업무는 외교부, 출입국 제도는 법무부, 병역은 국방부, 세금 문제는 국세청, 한국 내 체류 관련 업무는 행정안전부, 참전용사 등에 대한 보훈업무는 국가보훈처, 한국 내 건강보험 관련 업무는 보건복지부 등으로 소관 부처가 다르다.   이에 따라, 동포 정책이나 특정 업무와 관련해서는 정책 수립상의 혼돈이 수시로 발생하고, 재외동포들 입장에서는 여러 곳의 정부 부처를 상대해야 하는 고충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재외동포들에게는 실질적인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전담 기구가 필수적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신설될 재외동포 전담 부처가 재외동포 정책의 실질적 컨트롤 타워가 되기 위해서는 외교부나 행정안전부 등 특정 부처 산하의 외청인 ‘재외동포청(차관급)’이 아니라 국무총리실 직속의 독립적 ‘재외동포처(장관급)’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독립적 예산과 권한을 가지고 각 부처의 업무를 통합 조정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재외동포 전담 기구로서 기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기수 / 편집국장데스크 칼럼 재외동포처 설립 재외동포 정책 사실 재외동포 한국정부 입장

2022-03-17

[데스크 칼럼] 잘나지 않아도 존중받는 사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끝났다.   이번 대회에선 한인 2세 클로이 김 선수가 스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부문 올림픽 2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인들에게 큰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소식이었다.     하지만, 대회 직전 김 선수는 4년 전 평창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을 ‘쓰레기통에 던졌었다’고 전했다.   올림픽 이후 매일같이 온라인에서 인종차별 피해를 겪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AP통신은 지난 13일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선수들이 인종차별적 공격과 이중잣대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이 항상 인종차별적 폭력에 노출돼 있으며 이는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일 경우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좋은 성적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때만 그나마 가치있게 여겨지는 것 같다고 기사는 전했다.   이 소식은 미국사회의 고질병인 인종차별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했다.   미국서 태어나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클로이 김이 이 정도라면 대부분의 한인들이 처한 현실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가끔 미국생활을 오래 한 한인들과 인종차별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다.   사람마다 경험이 달라 인종차별 유무를 놓고 설전에 가까운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체로 관찰되는 현상 가운데 두드러진 점은 자신의 분야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거나, 일부 전문직 종사자, 중산층 이상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 사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차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에 대한 차별 행위가 적을 수도 있다. 또는 차별적 행위가 아주 세련된 형태라서 미처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직장 내 승진 경쟁 등 차별을 해야 할 ‘결정적 순간’이 없었을 수도 있다.   반면, 불특정 다수 속에서 생업에 종사하거나 ‘잘 나가지 못하는’ 한인일수록 ‘차별’의 경험을 더 많이 갖고 있었다.   지난해 본지 설문조사에서도 한인의 절반 이상이 ‘인종차별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민자 또는 이민자의 자녀로 미국에서 사는 대부분의 한인들은 시민권 보유 여부에 관계 없이 스스로를 미국사회의 주인이자 당당한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   성실히 일해 세금을 납부하고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대우와 존중을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경우 주류사회에 두드러진 공헌을 하거나 탁월한 성과를 입증해야 겨우 차별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다.   이제는 우리 자녀들이 피부색에 관계 없이 올림픽 메달을 따지 않아도, 방역물품을 대량 기부하지 않아도, 잘나지 않은 평범한 시민이라는 것만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박기수 / 편집국장데스크 칼럼 존중 사회 인종차별 경험 인종차별적 폭력 인종차별적 공격

2022-02-24

[데스크 칼럼] 누구를 위한 설인가

오는 2월 1일은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다.   먼 타국으로 이민 와서도 한국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정체성을 간직하기 위해 설 명절을 기억하고 지켜나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한인사회의 수년 간의 노력 끝에 2015년 뉴욕주의회에서 설 휴교법안이 통과됐고 같은해 뉴욕시가 설을 공립학교 휴교일로 지정했다. 이어 2016년부터는 롱아일랜드 그레잇넥 학군을 비롯해 곳곳에서 설을 휴교일로 지정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설 휴교일 지정 때부터 조용히 제기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공립교 휴교일 지정 운동이 한창일 당시, 이를 환영하지 않거나 의아해 하는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첫 번째는 한인사회 내부의 환영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이들은 대부분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들로 명분상 대놓고 반대는 못하더라도 내키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교가 휴교하면 결국 아이들을 어딘가에 맡겨야 해 추가로 비용이 발생하거나, 부모 중 한 명이 휴가를 써야 한다는 이유다.     자녀를 데이케어 등에 맡길 필요가 없는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들도 “어차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며 설 휴교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두 번째는 한인들과 어느 정도 교류가 있는 타민족 주민들의 반응이었다. 직장에서 한인 동료와 함께 일하는 타민족들은 “그렇게 중요한데, 왜 지금까지 한 번도 설에 휴가를 쓰지 않았지?”라고 의아해했다. 또 한인 사업체를 이용하거나 거래를 하는 타민족 역시 설 명절인데 문을 닫는 업체가 전무하다시피한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종교 율법에 따른 영향이 크긴 하지만, 유대인 커뮤니티의 경우 그들의 안식일인 토요일은 물론이고 중요한 그들의 명절엔 많은 업체가 문을 닫고 있다.     드물지만 한인사회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는 있다. 롱아일랜드의 뷰티 프로덕트 전문업체 ‘키스’는 설은 아니지만 추석 명절엔 휴무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한인 업체들이 모두 설에 휴무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회사나 업주들은 그럴 수 없는 입장이라는 점도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이젠 설에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설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방안을 한인사회 차원에서 함께 고심해 볼 때다.     물론 설 행사나 (조)부모 성묘 등을 다른 날인 주말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특정한 날을 명절로 정해 그 날을 꼭 지키는 것도 나름의 의미와 이유가 있다.     올해도 어딘가에선 자녀들만 집을 지키고 있을 설 아침 풍경이 왠지 안쓰럽고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박기수 / 편집국장데스크 칼럼 공립학교 휴교일 한인사회 차원 한인사회 내부

2022-01-27

[데스크 칼럼] 코로나19 음성확인서 유감

겨울방학 동안 집에 와있던 아들이 지난 주말 대학으로 돌아갔다.   학교에선 강화된 방역지침 때문에 기숙사 복귀일 72시간 이내의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검사 수요가 급증해 시간에 맞춰 예약을 할 수 없었다. 예약 없이 ‘워크 인’으로 운영되는 모바일 검사소 등의 옵션도 있었지만 제 시간 내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민간업체가 유료로 운영하는 검사소에서 검사를 받고 이틀만에 결과를 받아 학교에 낼 수 있었다.   이렇게 검사소를 알아보던 중에 의외로 쉽게 검사를 받고 결과도 빨리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곳들은 거의 모두 비싼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 일부는 건강보험으로 커버되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보험도 안 받고 비싼 요금을 청구했다. PCR 검사가 180달러인 곳부터 가정방문 검사로 500달러를 청구하는 곳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정부운영 검사소나 모바일 검사소, 또는 응급의료 업체나 약국 체인의 코로나19 검사는 무료지만 사람이 많아 검사받기가 쉽지 않다.     또, 체류 신분이나 건강보험 유무에 관계 없이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소 2~3일에서 길게는 5~6일씩 걸리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 내에 결과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엔 이용할 수 없다.   20일부터 한국에 가려면 비행기 탑승일 기준 48시간(2일) 이내 검사 후 발급된 코로나19 음성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한국정부가 해외입국자의 PCR 음성확인서 제출 기준을 종전의 ‘출발일 기준 72시간 이내 발급’에서 지난 13일부터는 ‘출발일 기준 72시간 이내 검사 및 발급’으로 변경했다가 20일부터는 다시 이를 ‘출발일 기준 48시간 이내 검사 및 발급’으로 강화했기 때문이다.   일정에 맞춰 비싼 한국행 항공 티켓을 예매한 경우, 출발일 48시간 이내에 검사를 받고 결과까지 통보받으려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비싼 돈을 치르더라도 민간 검사업체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이마저도 이런 유료 서비스 이용 방법을 알고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된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는 방역당국의 취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지침을 내릴 때는 그 현실적 시행 가능성도 당연히 고려해야만 한다.   미국도 항공편을 이용한 해외입국자에게 코로나19 음성확인서를 요구하지만 몇 시간이면 결과가 나오는 RAPID 테스트는 물론이고 심지어 자가진단 테스트 결과도 인정하고 있다.     한국 방역당국의 정책적 유연성 부족이 아쉬운 대목이다. 박기수 / 편집국장데스크 칼럼 음성확인 코로나 모바일 검사소 정부운영 검사소 민간 검사업체

2022-01-20

[데스크 칼럼] 재외선거, 우편투표가 답이다

제20대 한국 대선의 재외선거가 내달 23~28일 치러진다.   이를 위한 유권자 등록(국외부재자 신청, 재외선거인 신고)이 지난 8일 마감됐다.   필라델피아를 포함한 뉴욕총영사관 관할 지역에서는 15만9999명의 추정 선거권자 가운데 1만440명이 등록을 마쳐 6.5%의 등록률을 기록했다. 2012년과 2017년 대선 때보다 더 낮은 역대 최저 기록이다. 전세계적으로도 23만여 명이 등록해 19대 때보다 6만 명가량 줄었다.   한국정부와 언론에선 첫 대선 재외선거였던 2012년이나 탄핵정국이었던 2017년 대선과 비교해 이번엔 재외 유권자들의 관심이 덜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꼭 관심의 문제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제도상의 문제는 이번에도 핵심을 비켜갔다.   물론, 초창기에 비해 온라인·이메일 등록 허용 등 등록절차가 개선됐고, 최근엔 투표소 확대 설치 등 부분적인 개선 노력도 이뤄졌다.   반면, 그동안 줄곧 제시돼 온 우편투표 도입은 이번에도 무산됐다.   무관심하기 힘들 정도로 쏟아지는 선거 안내·홍보 인쇄물로 충분한 정보를 얻고, 임시공휴일인 선거일에 걸어서 5~10분이면 닿는 투표소에 가면 되는 한국에서와 달리, 재외선거 유권자들은 부족한 정보 속에서 많게는 5~6시간 이상 이동해야 투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름값·톨 등 모든 비용이 유권자 부담이다. 따라서 한두 번 해본 유권자들은 투표에 참여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등록부터 포기한다. 꼭 한국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우편투표의 도입이다. 미국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치러진 지난 대선 때 많은 주들이 보편적 우편투표를 시행했다.     재외선거를 실시하는 전세계 110여개국 중 직접투표만 허용하는 곳은 절반 이하인 50개국가량이다. 선진국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는 38개국 가운데 직접투표만 실시하는 나라가 한국 외에 터키·체코 등 10개국이 채 되지 않는다. 독일·스위스 등 정치 선진국 11개국은 오히려 우편투표만 허용하고 있고, 직접·우편 투표 등을 병행하는 곳도 10여개국이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부재자 투표의 대부분을 우편투표로 하고 있으며 주에 따라 이메일이나 팩스로도 투표를 허용하는 곳이 있다.   많은 선진국들이 우편투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은, 유권자들의 시민의식을 신뢰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참정권 보장이 일부의 공정성 훼손 우려를 압도하는 더 절대적 가치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미 경제·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이다. 정치제도도 이에 걸맞게 선진화돼야 할 때다. 박기수 / 편집국장데스크 칼럼 재외선거 우편투표 재외선거 우편투표 재외선거 유권자들 우편투표 도입

2022-01-13

[데스크 칼럼] 그래도 또 다시 설레는 새해

어느 해건 새해를 맞이한 1월 초엔 설렘이 있다.     아직 슬프거나 우울한 소식보다는 좋은 일이 많은 한 해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가 아무리 힘들었더라도, 새해가 시작되면 뭔가 삶이 ‘리셋’되고 ‘초기화’되는 것 같은 희망이 샘솟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올해 예정된 진학, 취업, 결혼, 내집마련 등 개인적 이벤트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렐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선거 등의 정치적 변화나 올림픽·월드컵 같은 스포츠 이벤트에 설렐지도 모를 일이다.     여느 때처럼 새해를 맞았지만 올해의 설렘은 각별하다. 지난 2년 가까이 우리를 답답하고 힘들게 했던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제는 끝나고 일상의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1월 초,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전 국민이 백신을 맞게 될 여름쯤이면 팬데믹이 끝날 것으로 생각했었다. 실제로 한때는 팬데믹 이전 일상으로 거의 복귀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뜬금없이 ‘델타’ 변이가 등장하고 겨울 초입에 ‘오미크론’ 변이가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오미크론 변이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미국의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사상 유례 없는 1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암울한 소식이 매일 들려오지만, 그래도 오미크론의 확산은 1월 중순을 정점으로 점차 약화될 것이고 올해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감기와 같은 ‘엔데믹’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위드 코로나’라는 새로운 일상의 회복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희망 고문’일지도 모를 낙관적 전망에 기대어, 매일 들려오는 암울한 소식에도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다소 진부한 격언을 되새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연말연시 연휴를 보내고 새해 첫 출근했을 때, 이제는 여지없이 통과의례처럼 돼버린 주변 지인들의 확진 소식이 들렸다. 불안한 마음이 진정될 틈도 없이 자가격리에 따른 동료들의 빈 자리로 인한 자동적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순간 2020년 3월 팬데믹 발생 직후에 느꼈던 두려움의 기시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은 2022년엔 이 자리들이 곧 다시 채워질 것이고, ‘격리’ 중인 지인들도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희망이 있다는 점이다.   맷집이 커진 걸까. 팬데믹 초기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던 수많은 죽음과 일상의 멈춤이 더 이상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오미크론 확산의 두려움보다는 더 커진 것 같다.     지난 2년간 잃어버린, 그리고 이제는 잊어버리기도 한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뼈저리게 배웠기에, 올해는 어느 하나 당연한 것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일상을 즐기는 행복한 날이 오기를 꿈꾸며 또 다시 설렌다. 박기수 / 편집국장데스크 칼럼 새해 오미크론 변이 오미크론 확산 코로나 바이러스

2022-01-06

[데스크 칼럼] '해피 클리너스'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대학을 마친 큰 딸이 딴 일을 하고 있어 왜 그러냐고 물었다. "지난 몇 해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헤어질 때 마다 이별 카드 적어서 주고, 껴안고 울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제 나눌 수 있는 내 마음이 바닥났어요. 다른 일 좀 하면서 다시 채우고 아이들 만나려고요."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럴 듯도 했다. 늘 엄마 같다고 생각한 큰 딸이라 더 그랬다. 그리고 내 마음도 바닥난 것 아닌지 멍해졌다. 그런데 마침 엊그저께 플러싱타운홀에서 영화 '해피 클리너스'를 봤다. 나도 서른 해 가까이 살아온 플러싱 낯 익은 길과 쉼터 그리고 일터. 어눌한 영어를 하며 힘든 삶을 이어 가는 어머니와 아버지. 이들에게 서투른 우리말로 때로는 대들지만 도우려고 애쓰는 아들과 딸. '후러싱' 교회와 머레이힐 기차역, "돈이 없어서 이런 동네 공원에서 데이트한다"는 영화 안 말처럼 너도나도 '데이트'를 했던 그곳들. 쥐어 짜지 않아도 저절로 웃고, 눈물이 나는 우리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빼곡히 차 올랐다. 플러싱에서 자란 두 젊은이, 줄리안 김과 피터 이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다. 독립영화란 많은 돈 못 들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영화를 멋있게 부르는 말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하지만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가득 찬 타운홀에서 이들은 천둥 같은 손뼉 소리를 들었다. 가슴이 벅찼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느끼게 해줬다. 나에겐 더욱 그랬다. 뉴욕중앙일보는 '커뮤니티 신문'이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신문이란 돈 많이 못 들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신문을 멋있게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싸우고 지켜내야 할 것들, 꼭 알아야 할 것들, 그리고 이웃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에 값지다. 고달프게 독립영화를 만들 듯, 커뮤니티 신문을 만드는 일도 만만하지 않다. 힘이 들어서 때로는 마음이 바닥난다. 하지만 '해피 클리너스'를 본 사람들처럼 커뮤니티 신문에도 글을 읽는 사람들이 힘을 보탠다. 이민법 규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더 알고 싶어서, 도움을 받으려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답답한 일을 겪었는데 어찌해야 하는지, 아무개가 신문에 나왔다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려야 할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하는지 묻는다. 좋은 글과 사진에 고맙다고 손뼉도 쳐준다. 그래서 가끔씩 바닥나는 가슴을 다시 채워준다. '해피 클리너스'에 쏟아진 손뼉 소리가 마치 우리 커뮤니티에 더 많이 힘써달라는 북돋움 같았다. 커뮤니티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모두 같은 느낌을 받았으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많이 고마웠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8-18

[데스크 칼럼] '백인 우월주의'와 테러

지난달 연방수사국(FBI)은 의회 청문회에서 지난해 10월 뒤 붙잡은 미국 안 테러리스트는 거의 모두 다 '백인 우월주의'와 얽혀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백인 우월주의' 테러리스트를 가려내는 일에 앞서 나서지 않는 까닭을 묻자 "아무리 역겨운 것이라도 '사상' 자체를 수사하지 않으며, '사상'과 상관 없이 국내 테러나 혐오범죄를 극도로 심각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레이 국장은 미국에 사는 사람이 '지하디스트(이슬람 극단주의 무장투쟁 조직)'를 믿는 '자생적 폭력 극단주의'는 국제 테러로 나눈다고 했다. '사상'에 대한 서로 다른 잣대다. 지하디스트는 따로 살펴야 할 사상이고 백인 우월주의는 아니다. 아니다 다를까 백인 우월주의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 3일 텍사스 총격 사건에 백악관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은 같은 말솜씨를 보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데 맞서 총격 용의자들은 '미친 사람들'이고 '정치'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고 풀이했다. 그들이 미친 것은 맞지만 백인 우월주의 '사상'이나 '정치'에 애써 손 사래질을 하는 꼴에 속이 거북하다. 미국에 있는 지하디스트를 샅샅이 찾아내 모조리 잡아야 하듯이, 백인 우월주의도 똑같이 다뤄야 하는데 그럴 뜻이 없다.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이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이니 오죽이나 하겠나. 백인 우월주의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너무 부드럽게 만든 잘못된 말이다. 지하디스트와 똑같은 극단주의이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피'를 부른다. 이민자와 유색인종에게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힘줘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미쳤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건 맞다. 그래서 FBI 국장과 백악관 비서실장의 말은 틀렸다. 그들이 틀렸다는 건 끝없이 늘어나는 '백색 테러'가 보여준다. 총기 규제는 두 말할 것도 없다. 텍사스 사건 뒤 바로 어머니들이 백악관과 의사당 앞으로 몰려갔다. 마침 가까운 곳에서 모임을 하고 있던 단체 'Moms Demand Action'은 텍사스 얘기를 듣고 바로 일어섰다. 그리고 백악관과 의회가 '비겁'하다고 시원하게 욕했다. 마침 트럼프는 총격 사건이 "비겁한 행위"라고 트윗을 날렸는데 화살은 그에게 되돌아갔다. 미국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도려내고 총기를 막는 일은 하나다. 그리고 아무리 소리 질러도 대통령과 의회가 오늘날 이 꼴이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갈 수 없다. 그래서 2020년엔 '다 바꿔'야 한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8-04

[데스크 칼럼] "우리는 떠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시내에 나갔다가 길에서 봉변을 당했다. 구걸을 하는 사람이 앞을 가로막길래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더니, 뒤에서 내 뒤통수를 향해 큰소리로 '중국 X년아, 중국으로 돌아가!(Chinese bitch! Go back to China!)'라고 외쳤다. 아직 해도 지지 않은 맨하튼 한복판에서…. 대통령이라는 작자부터 노골적으로 인종 혐오, 이민자 혐오를 조장해대니, 이제 대놓고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분위기로 가는구나. 오늘은 언어폭력으로 그쳤지만, 다음에 테러를 당할 수도 있겠다 싶다. 이거 정말 위험하다. 싸워서 막지 않으면 역사의 비극이 되풀이 될 거다. 옆에 있던 아이가 더 당황했을 거 같은데, 도리어 침착하게 내 팔을 꼭 잡으며 '엄마, 무시해. 엄마는 이 먼 나라까지 혼자서 온 용감한 사람이야'라며 나를 위로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광기를 막아야 한다." (남수경 변호사) "1년여 전이었다. 팰리세이즈파크 타운 미팅에서 재산세 문제를 다른 타운과 비교하며 듀플렉스 건축으로 몇 배로 자동 증액되는 세원이 많은데 왜 인상되냐고 질의하자 한 백인이 '코리안들은 팰팍이 싫으면 다른 타운으로 이사를 가라'는 발언을 했다. 2개월에 걸쳐 강력히 시정을 요구하고 타운 미팅 공식 발언대에서 사과를 받고 난 후부터 그가 한인을 대하는데 신중해졌다." (권혁만 팰팍한인유권자협의회 회장)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대통령의 말에 '허드 투(Heard Too.나도 그런 말을 들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민자 가운데 이런 말 듣지 못해본 사람이 드물 터이다. "이 나라가 싫으면 떠나라"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생각 좀 하라고 꾸지람을 해야 한다. 옛날 한국에서는 군사독재에 맞서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한국이 싫으면 북한에 가서 살아라."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피땀 흘려 독재를 무너뜨렸다. "떠나라"는 말은 다르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파시즘'이다.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잘못된 점을 밝히려 하는 데 "이 나라를 싫어하니 떠나라"고 한다면 그건 막말을 넘어선 '언어폭력'이다. 더구나 이민자와 이민자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더 나쁜 짓이다. "다른 곳에서 굴러들어온 너희들을 쫓아 내고 싶다"는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속마음'을 밝히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민자들은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생각이다. 서로 업신여기지 않고, 더 고르고, 더 올바르고, 더 많이 나누는 그런 미국을 만들고야 말 것이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7-21

[데스크 칼럼] 메건 래피노의 월드컵 우승

아침 스포츠 라디오 방송에서 말다툼이 일었다. 미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 청취자가 몹시 못마땅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 손을 가슴에 얹지 않는 반애국적인 선수를 왜 먼저 내보내나. 그를 앉혀뒀다가 나중에 뛰게 하면 되지 않나. 나라를 지키는 데 몸바친 참전군인들을, 나라를 깔보는 선수와 감독이 믿어지지 않는다." 대표팀 공격수 메건 래피노에 대한 '욕'이었다. 그는 국가가 나올 때 가슴에 손을 얹지 않은 지 오래다. 미프로풋볼 선수였던 콜린 캐퍼닉이 무릎을 꿇었던 것과 같은 까닭이다. 성.인종 차별로 얼룩진 미국이 바뀌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들은 반애국적이라는 욕을 먹는다. 잠시 뒤 다른 청취자가 또 못마땅해서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말은 달랐다. "나는 참전군인 출신 흑인이다. 래피노가 하는 행동이 바로 애국이다. 보다 평등한 나라를 바라는 게 왜 말썽인가. 참전군인들을 모욕한다고? 나는 그가 더 자랑스럽다." 백인 여성 진행자는 약삭빠르게 말다툼에 말려들지 않았다. 다만 흑인 참전군인들이 더 크게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래피노는 올해 월드컵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여성 혐오.인종차별주의자'라고 대놓고 몰아세웠다. 월드컵 우승을 하고 백악관이 불러도 "나는 우라질 백악관에 안 간다"고 했다. 그런 그를 '애국' 타령을 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리는 없다. 그런데 묻고 싶은 게 있다. 손을 가슴에 얹지 않고, 무릎을 꿇는 게 왜 나라를 깔보는 것인지. "나라를 깔보기 위해 이렇게 한다"고 말한 사람도 없다. 그들은 그냥 차별에 맞서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린 아직도 차별이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 없어져야 할 차별이 있다는 데 애써 눈을 감으려는 사람들의 억지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억지 부리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내려진 손과 굽힌 무릎에 손뼉을 친다. 방송이 끝난 뒤 미국 대표팀은 우승을 했다. 4번째 월드컵 우승이다. 올해 34살인 래피노는 이번 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았고, 5경기.428분을 뛰며 6골을 넣고 3개의 도움주기를 일궈냈다. 결승전에서도 페널티킥을 차 넣고, 최우수선수상인 '골든볼'과 득점왕 '골든부츠'를 받았다. 정말 감독도 팀도 미쳤나 보다. 대통령에게 막말을 하는 반애국적인 선수를 국가가 울려 퍼질 때 내보내고, 페널티킥도 차게 하고, 마무리엔 온갖 값진 상도 휩쓸게 했다.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이 미치게 좋은 날이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7-07

[데스크 칼럼] '전쟁과 평화' 그리고 트럼프

지난달 민주당 대선 후보 1차 토론회. '같은 말 서로 다르게 하기'로 줄곧 갑갑했던 가운데 아주 잠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털시 개버드 하와이주 연방하원의원이 베풀어 준 아주 짧은 겨를이었다. 이라크전 참전군인 '벼슬'이 있는 개버드는 흔치 않게 해외주둔에 맞서는 사람이다. 그는 미국이 다른 나라의 일에 끼어들어야 하는 지에 대한 얘기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미군들을 모두 불러들여야 한다"고 서슴지 않고 말했다. 그는 요즘 이란과의 다툼에 대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전쟁에 미친 내각이 우리를 전쟁 코 앞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걱정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도 '핵전쟁'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얼굴도 잘 모르는 개버드가 다음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짬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민' '건강보험' '기후변화' '빈부격차' '학자금 빚' '낙태' '동성애'를 비롯한 여러 얘기 속에 묻혀 빛을 내지 못하는 '전쟁' 이야기를 뿜어내는 알찬 후보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펼쳐지는 '다른 나라 정권 교체' 정책에 꽤 오래 맞서왔다. 미국이 껴들기를 한 나라 가운데 더 좋아진 곳이 없다는 참말을 하는 드문 정치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토론회에서 개버드의 쓴 소리를 들은 팀 라이언 오하이오주 연방하원의원은 "꼭 트럼프의 말을 듣는 것 같다"고 맞받아 쳤다. 어처구니가 없다. 언제부터 트럼프가 '비둘기'가 됐나. 트럼프는 개버드의 말처럼 다른 나라와의 일을 다루는 자리에 '전쟁에 미친 사람들'을 잔뜩 앉혔다. 그리고 나라 안에서 '인종.이민.성.소득 계층 전쟁'을 일삼고 있다. 밖으로는 이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예멘을 비롯 곳곳에서 전쟁의 불을 지피고 있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유럽 나라들과 함께 이룬 이란과의 합의를 홀로 깼고, 이스라엘만 감싸면서 팔레스타인과의 다툼을 부추기고 있다. 연방의회에서 보낸 '예맨 내전 개입 중단 결의안'도 내던졌다. 전쟁에 피눈물을 삼키는 난민들을 나 몰라라 하고, 전쟁으로 배를 불리는 군수업체들의 '외판원' 노릇을 위해 우리가 낸 세금으로 온 누리를 날라 다니고 있다. 그리고 기후협약에서 홀로 빠져나오면서 지구를 '환경 파괴 전쟁'으로 내몰고 있다. 그런데 그가 몇몇 나라에서 떠나겠다고 으름장 놓고, DMZ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손을 잡았다고 '비둘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속내가 어떻던 북한이 핵무기를 내치고, 한반도에 평화가 깃드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리 저리 둘러봐도 트럼프는 여전히 우리가 아는 그 '트럼프'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6-30

[데스크 칼럼] 5·18과 민권운동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1일 뉴욕에서도 열렸다. 올해로 서른 아홉 해를 맞았다.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아래 열리던 기념식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 집권 정당 대표와 총영사, 평통 회장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옛날에는 5.18 기념식에만 가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걸렸다. 미국에서 해마다 기념식을 열었던 단체 회원이었던 탓에 한국으로 돌아간 뒤 잡혀서 갇힌 이도 있었다. 이제 그런 일은 없다. 1981년 뉴욕에서 처음 열렸던 기념식 사회를 맡았던 최한규씨도 이날 왔다. 그는 이제 70이 훌쩍 넘어 은퇴를 했다. 그는 첫 기념식에서 사회를 본 탓에 오랜 기간 욕을 먹었다고 한다. 이젠 그다지 욕도 먹지 않는다. 많이 달라졌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기념식을 마무리하며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눈시울은 서른 아홉 해가 지났어도 뜨겁다. 1980년대 욕을 먹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그 뿌리는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리고 이제 큰 나무가 돼 한인사회 민권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5.18 대동정신을 이어받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제대로 살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 거의 모두가 1세였던 그들은 이제 1.5세, 2세들까지 함께 아우르며 반이민 정책에 맞서고, 선거 참여운동 등을 통해 정치력을 키우고, 어려운 한인들을 돕는 봉사를 하고 있다. 5.18이 미국 땅에 남긴 열매다. 그렇다고 이들이 '어머니의 땅'을 잊은 것은 아니다. 최한규씨는 지난 4월 27일 맨해튼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손잡기 뉴욕대회'에서 옛날에 함께 일했던 단체 출신들을 30여 명이나 만났다고 했다. 물론 그날 대회를 이끌었던 사람들 가운데에도 같은 뿌리에서 자란 한인들이 있다. 5.18은 한인사회에도 이렇게 큰 힘을 줬다. 올해 광주의 한 방송에서 뉴욕에 취재를 온다. 5.18 특별기획으로 '광주의 마지막 수배자'로 불렸던 고 윤한봉 선생과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항쟁 지도자였던 그는 5.18 뒤 미국으로 망명해 한국 민주화 운동과 함께 한인들의 민권운동 참여를 북돋은 길잡이였다. '한 손은 조국, 또 다른 한 손은 동포사회를 위해'라는 구호를 내걸고 한인들을 이끌었다. 그때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이 이제 50~70대가 됐다. 많은 이들이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후배들이 그 뿌리를 이어 줄기를 다듬고, 가지를 뻗치고, 열매를 맺어 가고 있다. 오늘 당신이 플러싱의 한 단체를 방문해 어려움을 말하고, 도움을 받았다면 당신은 바로 그 후배들의 손길과 닿은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수십 년이 흘러도 늘 5.18을 잊을 수 없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5-12

[데스크 칼럼] 사람은 달라져야 산다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아 27일 맨해튼과 한국 비무장지대(DMZ)를 비롯 전 세계에서 평화 손잡기.인간 띠잇기 마당이 펼쳐졌다. 맨해튼 남.북 유엔대표부를 잇는 '평화 손잡기'에는 준비위원으로 440여 명이 이름을 올리고, 350여 명이 스스로 나오는 등 한 뜻으로 모여 뜨거웠다. 손잡기가 끝난 뒤 오랜만에 가슴이 뭉클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러 해 앞으로 되돌려보면 이런 일은 '빨갱이'라며 손가락질 받기 일쑤였고, 욕을 먹을 다짐을 하고 나서야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적은 사람들만 모였는데 이제는 꽤나 마음이 열린 분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일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들이 한 구석에 몰린 듯한 느낌이다. 이 분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그래서 또 가슴이 찡하다. 이 분들은 어림잡아 이렇게 말씀한다. "북한이 저지른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지 않아 모르고, 잊었기에 허튼 짓을 한다." "북한 정권은 믿을 수 없다. 비핵화 안 한다." "문재인 정권은 북한에 한국을 갖다 바치려는 빨갱이.친북.좌파 정권이다." 듣다 보면 점점 더 거침 없는 말씀을 한다. 하긴 옛날엔 마음 편하게 이른바 '반정부'를 꾸지람하던 분들이 거꾸로 '독재타도.헌법수호'를 외치며 '반정부 투쟁'을 벌여야 할 노릇이니 답답하실 것 같다. '5.18'은 간첩들이 저질렀고, '세월호'는 '시체 장사'하는 것들인데 참 답답하리라. 그런데 어쩌겠나. 사람들이 달라져 '빨갱이들'이 많아졌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지구는 아직 판판하고, 돌지 않는다. 아직도 왕에게 조아리며 힘들게 벌은 것을 빼앗기고, 이리저리 팔려 다니며 궂은일을 해야 한다. 원주민.흑인.아시안 등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고, 그래서 업신여김 당해 마땅하다. '계집'은 투표를 못하고, 하루 12시간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어 한 소리했다간 두들겨 맞고 목숨을 잃는다. 돈 없는 집 아이들은 키도 다 안 자랐는데 허리가 부러지게 일하고, 젊은이들은 앙갚음 할 일도 없는 곳에 끌려가 서로 싸우다 일찍 숨을 거두거나 다쳐서 비틀거리며 산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으면 많은 이들이 오늘도 이렇게 살았을 터이다. 그래서 달라져야 한다. 더 나은 길을 찾고, 새 것에 겁내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많고 적어서 다른 게 아니라 마음이 닫히고 열려 있어 다르다. 달라진 사람들은 '빨갱이'가 아니라 처음부터 마음을 닫지 않았거나 아니면 열은 까닭이다. 정권들은 못마땅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평화를 외쳐야 한다. 한국전쟁을 잊어서가 아니라 그 아픔을 안다면 더 외치며 손을 잡아야 한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4-28

[데스크 칼럼] '한인사회는 관심 밖'

13일 플러싱에서 재외한인사회연구소(The Research Center for Korean Community)가 '뉴욕 한인사회 다큐 시리즈' 상영회를 열었다. 재외동포재단 후원으로 만드는 시리즈 첫 작품으로 '뉴욕 민권센터의 30년'을 보여줬다. 연구소는 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 안에 지난 2009년 둥지를 마련했다. "재미한인에 대한 연구를 장려하고, 재미한인에 관한 데이터와 자료를 한인 커뮤니티.대학.연구기관.한국 및 미국 정부기관에 배포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연구기관입니다." 이날 나눠준 전단에 적힌 글이다. 연구소장은 퀸즈칼리지 민병갑 교수(사회학)가 처음부터 맡고 있다. 상영 후 마련된 대화의 시간에 민 교수는 가슴 아픈 말을 했다. "수많은 미국 대학에 한국 학과가 있지만 한인사회를 다루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주로 한국 문학.역사.언어 등을 가르치는 학과들에 많은 지원을 하지만 한인사회에 대한 연구에는 관심도, 지원도 없습니다." '한인사회는 관심 밖'이라는 뜻이다. 밑천이 없으니 한인사회를 파보려는 학자들도 찾기 힘들다. 따라서 한인사회는 현실을 따져볼 통계가 거의 없고, 역사를 잃어가는 커뮤니티가 되고 있다. 옛날부터 한인사회는 언제나 떠나온 땅에 짝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고국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팔을 걷어붙이고 돈을 모아 보내고, 거리로 나가고, 목청도 높여 왔다. 하지만 '세계화'란 번쩍이는 구호 아래에서도 늘 때 되면 가끔씩 나왔다 사라지는 '재외동포 지원'이란 뜬구름만 보면서 살아왔다. 물론 지원은 제대로 해야 한다. 엉뚱한 데 국민의 세금을 낭비할 수 없다. 그런데 반드시 해야 하는데 제대로가 아닌 것이 바로 '커뮤니티 단체'와 '한인사회 연구소' 지원이다. 더구나 한인사회는 갈수록 1세와 1.5세, 2세가 뒤섞이며 여러 갈래의 길로 가고 있다. 이들이 하나로 모여 한인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가 움직이는 곳, 그리고 그 발자취를 가려서 남기는 곳이 여기다. 정계 로비 등 몇몇 사람의 '날 좀 보소'로 전락하기 쉬운 '화려한' 활동 말고 정말 도와야 할 곳들이 있다. 커뮤니티에 뿌리 박고 땀 흘리는 이들이 '관심 밖'이 되지 않는 고국이어야 '어머니의 땅'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이번 재외동포재단의 후원은 손뼉을 쳐야 할 일이다. 오는 6월 연구소가 UC리버사이드 장태한 교수를 초청해 세미나를 연다. 한인사회 연구는 동부에 '민병갑', 서부에 '장태한'으로 불릴 정도로 두 학자는 '관심 밖'인 곳에서 마라톤을 달리고 있다. '관심'을 쏟아야 한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4-14

[데스크 칼럼] 백인우월주의와 테러

"출생률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내일 모든 비유럽인들을 쫓아낸다고 해도 유럽 사람들은 삭아 버려 끝내 죽음에 이른다." "우리는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수준의 침략을 겪고 있다. 백인들은 번식에 실패했다. 정부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값싼 노동력, 새 소비자, 납세자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정부와 기업들은 백인들을 대체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수백만이 우리 국경을 넘어 몰려 오도록 초대한다." "다른 사람의 아이들로 우리의 문명을 되살릴 수 없다. 유럽의 모든 출생률은 대체비율 밑이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그건 죽어가는 문명이다." "프랑스로 진격한 동맹군 군인은 15만 명이었다. 15만 명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공격이었다. 성인 24만 명과 거의 6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지난 2개월간 3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텍사스를 통해 미국을 침략했다. 그리고 또 30만 명이 중미에서 미국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뉴질랜드에서 호주 백인우월주의자 테러범이 총을 쏴 50명을 죽였다. 그는 일을 벌이기에 앞서 선언문을 남겼다. 위의 말 가운데 앞 문장은 그가 남긴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아래 두 문장은 미국 공화당 연방의원들의 말이다. 스티브 킹(아이오아)과 루이 고머트(텍사스) 하원의원이 이민과 관련해 했던 말이다. 테러범은 선언문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다양성은 약점"이라고 썼다. "다양성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단결, 목적, 신뢰, 전통, 민족주의 그리고 인종 민족주의가 힘을 준다." 또 대규모 이민은 나라를 분해한다고도 했다. "대규모 이민은 우리의 권리를 빼앗고, 국가와 커뮤니티, 민족적 동질감, 문화를 파괴한다. 우리 사람들을 파괴한다." 킹 의원도 다양성은 우리의 강점이 아니라고 외쳤다. 그는 "문화를 섞는 것은 보다 나은 삶의 질이 아니라 낮은 질로 이끈다"고 말했다. 테러범은 또 유럽 여성들이 이민자들에게 강간을 당한다는 얘기를 강조했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6년 대선 출마를 하며 첫 연설에서 했던 말이 떠올려 진다. "멕시코가 사람들을 보낼 때 최고의 사람들을 보내지 않는다. 그들은 마약을 들여오고, 범죄를 들여온다. 그들은 강간범이다. 그리고 가끔, 내 짐작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 허핑톤포스트가 뉴질랜드 테러 사건을 보도하며 이렇게 우리의 기억을 되살려줬다. 물론 모두 테러를 규탄했고, 대통령과 이 의원들을 테러에 엮으려는 것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백인우월주의가 '백색 테러'를 부추기는 것은 맞다. 이슬람국가(IS)와 백인우월주의자는 같다. 우리는 극단이 판치는 무서운 시대에 이민자로 살고 있다. 우리가 바꿔야 한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3-17

[데스크 칼럼] 아마존과 국가비상사태

아마존이 뉴욕시 롱아일랜드시티를 내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장벽을 쌓겠다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아마존 제프 베조스 CEO와 트럼프 대통령은 사이가 좋지 않다. 하지만 둘은 같은 점이 많다. 돈이 많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어마어마하게 흔들 수 있는 힘이 있다. 아마존이 뉴욕에 들어오는 것을 마구 막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30억 달러나 되는 감세 혜택을 받고 제2 본사를 지으면서 커뮤니티를 위해 하겠다는 일은 너무 적다는 데 화가 났다. 아마존이 뉴욕을 버리자마자 '0 달러' 세금 이야기가 쏟아졌다. 지난해 아마존은 110억 달러를 벌었는데 연방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이렇게 된 데는 트럼프의 감세 혜택이 큰 몫을 했다. 아마존만 그런 건 아니다. '포천500' 기업들 가운데 40%가 지난 2008~2015년 사이에 적어도 한 해 넘게 연방 세금을 한 푼도 안 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지난해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낮췄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연방 세금 수입은 바닥을 쳤고, 정부 빚은 22조 달러로 치솟았다. 트럼프 취임 뒤 무려 2조 달러가 늘었고 미국인 한 사람이 6만7000달러씩 빚을 지고 있다. 그런데 아마존은 뉴욕에서 또 감세 혜택을 원했고, 트럼프는 국경 장벽에 80억 달러를 쓰겠다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2조, 2조, 80억, 30억, 그냥 사람들은 입만 딱 벌릴 돈이다. 미국인들은 집 모기지 빚 10조, 학자금 빚 1조5000억, 크레딧카드 빚 1조200억, 전체 빚이 13조다. 한 집이 주름잡아 13만 달러가 넘는 빚을 지고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 같은 이들의 돈 잔치는 끊이지 않는다. 그 곳에 베조스와 트럼프가 있다. 국가비상사태인 것이 맞다. 실업자가 줄었다고 좋아만 할 수 없다. 일을 해도 자꾸 빚이 쌓이고 삶은 곪는다. 모두 다 힘든 건 아니다. 하지만 힘든 사람이 너무 많아 '부자 증세' 외침에 손뼉을 친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할 까닭은 또 다른 곳에 있다. 2012년 커네티컷 초등학교 총기 난사로 아이들 2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이맘때 플로리다 고교에서 젊은이 17명을 잃었다. 하지만 들끓었던 총기 규제 외침은 시들해졌다. 2013년 뒤 네 사람 넘게 죽거나 다친 총기 사건은 2000여 건이었다. 2200여 명이 죽었고 8200여 명이 다쳤다. 한 주에 한 번 꼴로 총기 난사가 이어졌다. 2014년 1월 단 한 주만 없었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 다만 국경장벽은 아니다. 세법도 바꿔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 감세는 아니다. 트럼프와 베조스는 우리와 다른 나라에 살면서 서로 싸운다. 그 나라는 어딘가.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2-18

[데스크 칼럼] 불법이민 아닌 서류미비

툭하면 듣는 '법 앞에 평등'이란 말은 듣기만 좋고 쓸 데가 없다. 평등하지 않기에 평등하다고 억지를 부리는 말인 탓이다. 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들고, 고치고, 뒤집고, 있거나 없는 걸로 한다. 헌법도 마찬가지다. 요즘 이민자들에겐 법이 말썽이다. '불법'이란 말은 잠깐이면 '합법'으로 바뀔 수 있다. 이민자 단체들이 불법체류자(illegal alien) 또는 불법이민자(illegal immigrants)를 서류미비자(undocumented)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그리고 사람은 불법일 수 없다(no human being is illegal). 하지만 '이민 서류'가 없는 건 맞다. 그래서 법을 바꿔 서류를 달라는 것이다. 1986년 이른바 '사면'이라고 부르며 서류를 줬던 때가 있다. 그 때 300만 명이 합법이 됐다. 지금은 한인 20만여 명을 비롯 1100만여 명이 서류미비자다. 이렇게 많아진 것도 법이 바뀌어서 그렇다. 서류미비자라 하더라고 가족.취업 이민 신청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면 1000달러를 내고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이민법 245(i) 조항이 2001년 4월 없어졌다. 245(i) 신청자는 2001년 4개월 간에만 31만5000여 명이었다. 그 뒤 합법의 길은 없어졌고 서류미비자는 자꾸 늘어났다. 법의 줄거리는 거의 이렇다. 힘 센 사람들이 만들고 모두에게 꼭 지키라고 한다. 맞는 말도 꽤 많이 넣는 데 언제나 생각이 못 미친 곳이 있다. 또 일부러 속셈을 하고 그른 말을 넣어 몇몇 사람들 뱃속을 채우려 한다. 이들이 잔뜩 배를 부풀린 뒤에야 잘못이라는 외침이 커지면 못 이겨 바꾸며 또 속셈을 한다. 힘이 없는 사람들은 다르다. 때로는 어깃장 '불법' 딱지를 짊어지고 살면서 낑낑대다가 "해도 너무 한다"는 말이 나오면서 법을 새로 만들거나 바꿔달라고 모여서 외친다. 가끔은 꿈을 이룬다. 그 때 자취가 새겨지며 사람 살림은 앞으로 간다. 그런데 모여서 외칠 때 정말 '불법'을 저지르기도 한다. 넘으면 안 되는 곳을 지나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밀기도 하고, 주먹도 휘두르고, 뭘 좀 던지기도 한다. 힘 센 사람들이 '합법'으로 휘두르는 주먹질에 두들겨 맞기 일쑤이지만 그래도 애써 이길 때도 꽤 있다. 투표를 하겠다는 온 누리 여성들의 선거권 운동, 밥 먹고 자고 쉬고 싶다는 노동운동, 업신여기지 말라는 유색인종 민권운동이 그랬다. 그리고 지금의 이민자 권익운동이 그렇다. 불법이라고 혼내지만 말고 법을 바꿔서 합법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법 앞에 평등'이 잠시나마 된다. 처음부터 서류미비자들은 불법의 테두리에 가둘 수 없는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일하지 않는 서류미비자들은 되돌아 가게 마련이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2-10

[데스크 칼럼] 2020년 대통령 선거

선거운동 날짜를 잡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미국에선 한 해, 하루도 정치인들이 선거운동을 못할 날이 없다. 때문에 '당선된 날이 선거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날'이다. 그래서 2020년 11월을 앞둔 대통령 선거운동은 이미 2016년 첫 발을 디뎠지만 이제 스물 한 달 밖에 안 남았으니 코 앞이다. 겉치레이긴 하지만 공화당전국위원회(RNC)는 지난 25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공화당 대선 후보라는 결의안을 냈다. 공화당 안에서 트럼프에게 맞설 사람이 조금 있는 것 같지만 섣불리 나서지 못하게 일찌감치 못을 박은 것이다. 민주당 후보로는 수십 명이 나서고 있다. 미국 정치의 뿌리 깊은 잘못 가운데 하나가 선거운동이다. 선거란 나라를 이끌 사람을 뽑아 정치를 맡기는 것인데 정치는 하지 않고 늘 선거운동을 하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나라를 이끌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지 꾀를 쓰고 정책은 선거운동에 끌려 다닌다. 앞 뒤가 바뀐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월 15일까지 연방정부 업무정지 '셧다운'을 잠깐 미뤘다. 이제 선거운동은 정말 땀 나게 이어진다. 나라의 앞날을 밝히는 빛은 가리고, 사람들이 어느 쪽을 바라보게 해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지를 따지며 어둠을 키운다. 그래서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치는 미국-멕시코 국경의 담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거운동이다. 담을 국경에만 세우는 게 아니라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잡게 한다. "이민자는 나쁘고 더럽다. 그래서 미워하고 밀어내야 한다." 그러면 마음에 담을 쌓은 사람들이 나에게 몰린다는 셈을 한다. 반이민, 반낙태, 반동성애는 공화당이 지난 20여 해 써먹어 온 선거운동 단골 차림이다. 그리고 반이민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잘 팔아온 먹거리다. 이민자들이 미국에 얼마나 많은 보탬이 되는 지는 두 말 하고 싶지 않다. 이민자 가운데 서류미비자들만 때린다는 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다. 그 까닭을 알려면 눈을 조금만 크게 뜨고 둘레를 살펴 땀 흘려 일하는 서류미비자들을 보면 된다. 이들이 사라지면 농산물과 밥값이 치솟는다, 농업과 건축.호텔.청소.조경 등 이들의 손길이 닿아 있는 곳곳이 어지러워 진다. 그리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민사회 경제는 무너진다. 그럼 잘 모르고 반이민을 외칠까? 아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까닭은 선거운동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그렇게 서류미비자 단속을 외치면서도 정작 고용주를 세게 치지 않는 이유는 정말 다 쫓아내면 무너질 걸 알기 때문이다. 반이민은 선거운동이 정책을 뒤흔들고 망가뜨리는 가장 으뜸가는 일이다. 그래서 속내를 알리고 막아야 한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1-27

[데스크 칼럼]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8년 끝자락입니다. 지난 한 해도 뉴욕중앙일보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을 띄웁니다. 2018년 뉴욕중앙일보는 많은 것을 바꿨습니다. 회사 모양새나 알맹이가 지난 해처럼 많이 바뀐 때는 처음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이없는 잘못이 많았습니다. 지면이 겹치고, 틀린 글자가 늘어 여러 독자께서 따끔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힘과 가슴, 머리가 모자란 탓에 뜻이 꺾이기도 했습니다. 조그맣게 이룬 것도 있지만 결코 자랑할 정도는 아니기에 더 말을 꺼내지 않겠습니다. 다만 올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드리겠습니다. 올해 뉴욕중앙일보는 한인사회 신문이 가져야 할 '이민생활의 길잡이' '민권.인권운동' '이웃 소식', 이 세가지 뼈대 위에 살을 찌우겠습니다. 우선 뉴스의 폭을 넓히고, 언제나 '한 걸음 더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독자 여러분의 눈도 더 넓고 깊어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미국에 오면, 왔던 그 때의 생각에 멈춰 살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어려움 때문에 한인사회 '섬' 안에 갇혀 살기 때문이라고 풀이합니다. 뉴욕중앙일보가 안팎을 더 넓고 깊게 보여드리는 알찬 뉴스를 싣도록 애쓰겠습니다. 또 보다 많은 길을 트겠습니다. 딱딱한 뉴스의 틀을 넘어 먹고.자고.놀고.입을 것들을 펼쳐 보이겠습니다. 그래서 넉넉한 마음을 누릴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오늘 저녁엔 무엇을 먹을지, 주말엔 어디로 갈지, 내일 무슨 옷을 입을지 등 시원하고 산뜻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는 글을 더 많이 싣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뜻을 기어이 이뤄내 내년 말이 되면 올해와는 달리 자랑을 하고 싶습니다. 자랑하려다 또 고개를 숙일지 모르지만 감춰진 얼굴로 살짝 웃을 수 있을 만큼이라도 이루기를 바랍니다. 다가올 한 해가 한인사회에 어떤 기쁨과 즐거움, 슬픔과 아픔을 줄지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합니다. 사람 마다 눈길은 끌리는 다른 곳으로 갑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한인들이 함께 겪을 일들도 많습니다. 한인들의 삶을 흔드는 이민.교육.복지.경제 등 미국 우리 정부의 정책, 북.미 관계, 한국의 앞날 등이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자꾸만 엉키고 시끄러운 앞날은 눈을 감아 안 보려 하더라도 우리 삶을 밀고 당겨 갑니다. 그래서 눈은 뜨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골치 아픈 것뿐 만이 아니라 좋은 일도 보여 눈을 맑게 합니다. 뉴욕중앙일보가 힘 닿는 데까지 보여드리겠습니다. 꾸준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어느 한 해라도 걱정 하나 없고, 속 태우지 않을 때는 없습니다. 그래도 땀 흘린 보람을 느끼고, 손 맞잡고 서로 보살펴 뿌듯해 하는 그런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뉴욕중앙일보는 여러분의 친구입니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8-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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